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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명물 교사진 A

 


 안녕하세요? 저는 화연여고 재학 중인 한 3학년생인데요. 우리 학교 자랑할 데가 여기밖에 없더라구요. 저희 학교가 명문고도 아니고 그저 교복이랑 학교 이름만 예쁘다고 유명한 학교지만 다른 이들은 모를 쩔어주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저희 학교 남선생님들이 진짜 최고거든요. 초호화 교사진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가르치는 실력도 실력인데 외모가 아이돌 저리 가라 수준이에요. 그 덕분에 고3인데도 아이돌 호모질 대신 선생님들이나 엮고 있다니까요. (이 선생님들 진짜 약간 그사세 쩔어서 사귀는 거 같아요, 리얼리...) 무튼, 이 글을 보고 있는 모든 중3들은 우리 화연여고로 오세요!

 


1. 선생님들 소개를 해봅시다.


 1교시 문학, 정호석

 


 "선생님, 솔직히 이번 거 너무 어려워요…."
 "어려워? 어떡하지…. 이거 시험 출제 다 끝났는데…."

 


 아, 쌤 너무 부지런하세요…. 아이들의 우는소리가 커지자 곤란한 듯 웃고만 있던 호석이 교탁을 가볍게 두드려 이목을 모았다. 자, 그래도 여기서 내가 다 집어준 데에서만 나오니까 너무 걱정 말고. 책상에 엎드려 연신 앓는 소리만 내던 아이들이 호석의 말에 비척비척 일어나 교과서에 시선을 고정했다. 정호석, 이라는 이름을 두고도 항상 밝은 얼굴로 있는 호석은 학생들에게도 교사들에게도 이름보다는 희망으로 더 많이 불렸다. 정 선생님, 문학 선생님, 하던 다른 교사들에게도 희망쌤! 하고 부르는 거 보면 말 다 했다. 희망쌤 맨날 저렇게 얘기하면서 문제는 절망적인데. 자칭 타칭 학교의 희망으로 불리는 호석에게 달린 유일한 부정적인 단어였다.

 


 "선생님, 선생님. 질문이요!"
 "응? 왜, 왜."
 "태형쌤이랑 같은 대학 나오셨다면서요!"
 "아…. 김태형이 그것도 말했어? 걔 왜 그런다니."

 


시험을 앞두고 반은 시험 정리 반은 자습으로 보내는 수업이 태반이었다. 물론 밤에 갖은 이유로 잠을 자지 못한 아이들은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잤고 다른 아이들은 자습, 또는 자습하는 척 낙서를 하며 놀았다. 하지만 호석이 하는 문학 수업은 달랐다. 자습보다도 호석과 대화를 하는 게 더 재밌기 때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단순한 호석에게서 들을 수 있는 교사 덕질용 일화를 듣기 위해서였다. 방금 들었어? 김태형이래. 응, 태홉임. 지랄 마, 홉태임.

 


 "근데 태형이는 왜?"
 "그냥요. 아, 태형쌤 여친 없어요? 솔직히 있을 것 같은데."
 "아, 여자친구? 없어. 진짜로 없어. 김태형 영, ...영원히 없을걸? 애가 워낙, 그... 숫기가 없어서."
 


 역시! 호석의 한마디에 다들 화색을 띠며 각자 자기 자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전히 선생님들 커플링을 두고 싸우고 있었다. 태홉이라니까? 응, 홉태. 다 닥쳐, 태형쌤 위에는 오직 하늘뿐. 학생들이 자신이 미는 커플을 얘기하기도 잠시 한 학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보다, 너네... 태형쌤이 숫기가 없다는 말에 아무도 이상함을 못 느꼈어?

 


 2교시 영어, 김남준

 


 "쌤, 남준쌤. 질문이요."
 "응? 왜, 모르는 거 있어?"
 "여기 해석이 어떻게 돼요?"
 "보자. 아, 분사구문이네. 보니까 이유로 해석하는 거 같다. 어떻게 하냐면."
 


 당신의 일이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라고 해석하면 돼. 긴 손가락이 문장을 훑고 지나감과 동시에 듣기 좋은 저음이 교실에 울렸다. 질문을 할 때나 교내 어디에서 마주칠 때 남준은 늘 부드럽게 웃으며 학생들을 맞았다. 보기 좋게 들어간 보조개는 많은 여학생들의 심장을 강타하는 무기요, 가끔 어려운 걸 설명해야 될 때 나오는 사뭇 진지한 표정은 여학생들을 죽이기엔 딱 좋은 갭 차이였다. 난 커서 김남준쌤 같은 남자랑 결혼할 거야. 오늘도 교사로 소비를 하던 학생들이 남준을 보며 제 미래 배우자에 남준을 대입했다.

 


 "형...! 아, 아니 김 선생님!"
 "...너 왜 여기, 보다 수업은 어쩌고? 나가, 수업 중이야."
 "자습 줬죠. 형도 딱 보니까는 자습 줬네."

 


드르륵, 하고 창문이 열림과 동시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갑작스레 찾아온 태형에 반 아이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태형쌤! 여기 왜 오셨어요? 잔뜩 상기된 목소리들이 태형에게 향했다. ...아주 학교 아이돌이지, 아이돌. 순하게 학생들한테 손을 흔들며 인사해주던 태형이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질문에 남준을 쳐다보며 웃었다.

 


 "글쎄, 보고 싶어서."

 


 끝까지 남준을 쳐다보며 말하는 태형에 보다 못한 남준이 한숨을 내쉬며 창가로 걸음을 옮겨 태형의 얼굴을 밀어내곤 창문을 닫았다. 언뜻 보이는 남준의 귀는 붉게 물들어 있어 그날 영어 수업은 태형과 남준을 엮는 학생들에겐 순정만화적 모멘트라며 역사적 떡밥으로 불렸다. 역시 태준 리얼임. 응, 닥 준태. 준태 주식 사세요, 맛나요.

 


 3교시 체육, 박지민

 


 "다음 수행평가 배구 서브 넣기니까 지금 각자 연습해, 놀지 말고. 알았지?"
 "아, 쌤... 저희 고3인데... 수능 보는데..."
 "... 그전에 수시로 넣어볼 생각은 아예 없는 거야…?"

 


 체육 수행이 무슨 수시예요, 그건 공부 잘하는 애들 해당임. 아이들의 볼멘소리에 체육 평가표를 들고 있던 지민의 표정이 곤란함으로 물들었다. 아니, 그러니까 공부를 잘할 생각을 가져야 하지 않아…? 당혹감에 젖은 목소리가 지민의 미성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아, 지민쌤 존나 귀여워…. 많은 학생들이 속으로 울부짖으며 지민을 쳐다보다 하나둘씩 체육 창고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도 존나 카와이했다, 인정? 어, 인정. 자칫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의 지민이었지만 학교에서는 늘 은은한 미소를 짓거나 웃음 장벽이 낮아 크게 웃음을 터트리는 일이 잦았기에 교내에서 지민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교내 웃음이 많기로는 2위-1위는 호석이다.-로 유명한 지민을 싫어하는 사람도 역시 없었다. 가끔 학생이 다칠 때면 웃음기를 싹 거두고 심각한 표정으로 다친 걸 살피는 지민의 갭은 학생들의 교사 덕질에 큰 기여를 하고 있었다. 아, 미친 완전 박 알파 최고된다.

 


 "선생님! 은솔이 다쳤어요!"
 "어쩌다가 다쳤어. 일단 보건실 가자."

 


 무릎이 잔뜩 까져 피가 흐르자 상처를 확인하던 지민이 자신이 더 아픈 듯 인상을 썼다. 은솔아, 걸을 수 있겠어? 걱정 어린 눈으로 올려다보는 지민에 다친 아이를 포함한 전체가 술렁였다. 씨발, 누가 나 좀 밀쳐봐. 같이 머리 박을까? 걸을 순 있다며 걸음을 옮기는 학생의 옆에 나란히 선 지민이 반 회장에게 연습하고 있으란 말을 전하곤 학생과 발을 맞춰 걸었다.

 


 "…근데 왜 저 쌤 맨날 애들 다치면 보건실 같이 가지?"
 "보면 모름? 석진쌤 보러 가는 거잖아."
 "맞을걸. 그 쌤 교무실에서보다 보건실에서 보는 게 더 많던데."
 "미친, 리얼? 진지네."

 


 뭐래, 짐진이지. 학생들의 커플링에 대한 언성이 높아질 즈음 지민도 어느새 보건실에 다다랐다. 유리창 사이로 보이는 인영에 지민의 입꼬리도 설핏 올라갔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자 컴퓨터에서 시선을 뗀 석진이 부드럽게 웃으며 절뚝이는 아이를 의자에 앉혔다. 어쩌다 이렇게 다쳤어, 다리에 흉이라도 지면 어떡하려고. 잔뜩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치료할 준비물들을 꺼낸 석진이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상처를 소독하곤 그 위에 거즈를 덧댄 석진이 상처에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너무 부담스럽게 보는 거 아니에요, 박 선생님? 뚫어지겠네."
 "…좀, 낯설어서?"
 "어디가요."

 


 일단 그 존댓말부터요.

 


 4교시 음악, 민윤기

 


 야, 그거 아냐? 오늘 짐진 오피셜 뜬 거. 미친, 언제? 4교시 음악 수업을 가기 위해 책을 챙기던 학생들에게도 지민과 석진의 이야기가 퍼졌다. 3교시 때, 5반 누구 다쳐서 보건실 같이 가줬다는데 거기서 터짐. 짐진 리얼이라니까, 최소 동거함. 한창 지민과 석진의 이야기로 열을 올리다 멀리 보이는 음악실 푯말에 학생들의 걸음이 빨라졌다. 수업 시작 전에 오면 가끔 음악 선생님의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음악실에 다다라 방음문 사이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소란스럽던 학생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조심스럽게 들어간 음악실에는 역시나 희고 긴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는 윤기가 있었다. 빨리 왔네.

 


 "슈가쌤, 방금 친 곡 뭐예요? 쌤 완전 잘 쳐요, 최고."
 "그냥 막 친 건데. 내키는 대로."

 


 무표정으로 건반을 몇 번 누르던 윤기가 다시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앓는 소리를 내던 학생들이 순식간에 입을 다물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윤기와 건반 위를 돌아다니는 손을 감상했다. 콩쿠르에 온 듯 다들 조용히 자리에 앉아 한참을 윤기를 쳐다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울리는 종에 탄식을 내뱉었다. 종과 함께 딱 연주를 멈춰버리는 윤기에 다들 아우성을 지르기도 잠시 안경을 꺼내 쓰는 자신들의 음악 선생님에 금세 알아서 입을 닫았다. 윤기가 자주 불리는 슈가는 흔히들 말하는 설탕과는 달랐다. 웃는 모습이 달달하다는 것과 달리 윤기의 성격은 굉장히 무뚝뚝했기에 학생들은 그를 보고 '슈가프리' 또는 '넌슈가'라 칭했다. 거기서 부르기 좋게 슈가라 줄였고 지금의 윤기의 별칭이 된 경위였다. 유일하게 윤기가 진정한 슈가쌤인 모습일 때는 가끔 이사장과 교장이 교내를 감찰할 때뿐이라고 한다.

 


 "솔직히 고3이 무슨 음악이냐, 너네가 듣는 음악이 너네 오빠들 앨범밖에  더 돼?"
 "나름 피아노 학원에서 소나티네까지 쳤거든요? 소나티네 1번 어? 막."
 "모차르트 K 545는 어느 피아노 학원을 가든 들리네요. 그거 다 상술이야, 상술. 학원 다니게 만들려는 상술."

 


 내 새끼도 저렇게 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하지. 윤기의 말에 금세 수긍한 학생들이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맨날 가면 소나티네 1번 치는 방 꼭 하나 있음. 의자에 앉아 손가락으로 교탁을 두들기는 윤기를 보던 학생들이 잔뜩 기대에 찬 눈으로 입을 뗐다. 슈가쌤, 다른 쌤들 얘기해주세요.

 


 "그래, 그거 궁금하다. 너네 왜 자꾸 나한테 그것만 물어?"
 "재밌잖아요오. 아, 쌔앰…."
 "아, 알았어. 물어봐, 물어봐. 다신 나한테 애교 떨지 마. 벌점 준다."
 "혹시 철컹철컹? 심쿵했어요?"
 "어, 쇼크로 심정지 오는 줄 알았다. 안 물어봐? 카운트 센다."

 


 아, 타임 타임! 그렇게 어디 있어요! 다급한 목소리에 작게 웃던 윤기가 빠르게 초를 세자 되는 대로 주위에서 질문이 던져진다. 카메라만 없지 거의 기자회견과 다를 게 없는 상황이었다. 쌤! 홉쌤이랑 친해요? 전에 누가 밖에서 쌤이랑 호석쌤 같이 있는 거 봤다던데. 한 아이의 질문에 손으로 턱을 괸 채 긴 막대만 만지작거리던 윤기가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렸다. 정호석이랑?

 


 "친하긴 한데. 뭐, 사실 다 친하지. 박지민이나, 김태형이나 남준이랑 석진 형이랑도 다 두루두루 친해. 나랑 석진 형이랑 같은 대학 출신이고."
 "진짜요? 호석쌤이랑 태형쌤도 같은 대학 출신이래요."
 "맞아, 그 개… 김태형이랑 홉이가 같은 대학 나왔고. 남준이랑 석진 형이랑 같은 고등학교 나왔고. 아, 박지민이랑 김남준도 같은 대학이었다."
 "와, 연 봐."
 "아, 그리고 남준이랑 호석이랑 원래 친구였고."

 


 뭐야, 이 미친 듯 꼬인 관계 족보는. 한 번에, 그것도 너무 큰 관계성 떡밥에 아이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윤기의 핸드폰이 알림을 울리며 존재를 알렸다. 아, 미안, 미안. 소리 끈다는 걸 깜박했다. 핸드폰을 들어 확인하던 윤기의 얼굴에 잔뜩 미소가 번졌다. 흔하지 않은 윤기의 미소에 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한 곳으로 모였다. 여전히 웃음을 지우지 않고 있던 윤기가 교탁에 턱을 괸 채 말을 툭 뱉었다.

 


 "근데 호석이랑 조금 더 많이 친하긴 해."


 
 5교시 일본어, 김태형

 


 "뭐야, 쌤 왜 안 들어와?"
 "회의 있으신 거 아냐?"
 "근데 이렇게 늦는다고? 지금 수업 이제 30분 남음."

 


 얘들아! 하아, 진짜 미안. 일이 있어서 좀 늦, 아이고. 수업 시간이 한참을 지나도 보이지 않는 태형에 아이들이 걱정하고 있을 즈음 문을 거칠게 열어젖힌 태형이 급한 숨을 고르며 사과를 했다. 숨이 차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태형을 진정시키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궁금한 걸 슬슬 털어놓기 시작했다. 쌤, 무슨 일이셨어요? 손부채질을 하며 교탁에 기댄 채 숨을 고르던 태형이 눈을 크게 키웠다.  뭐라고? 안 들려. 살짝 땀에 젖은 머리 때문에 원래도 잘생긴 얼굴이 색기가 넘쳐흘러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아이들에 태형이 고개만 갸웃거렸다. 너네 뭐라고 하지 않았어?

 


 "무슨 일이셨는데요?"
 "아, 뭐. 비밀."
 "아아, 뭔데요. 네?"
 "안 돼.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말랬, 엄마…!"

 


 비장하게 고개를 내젓다 제가 더 놀란 듯 눈을 크게 키우고 입을 막아버리는 태형에 교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기 바빴다. 빼박 회의는 아니네. 잔뜩 당황한 채 눈만 굴리던 태형이 짐짓 자세를 잡고 교탁을 몇 번 두드렸다. 자, 자 집중하고. 선생님, 얼굴 빨개지셨는데. 웃음기가 진하게 묻어난 목소리에 장난치지 말라며 교과서를 펴는 태형에게, 앞에 앉은 아이가 거울을 들었다. 장난 아니고 쌤 귀까지 빨개요.

 


 "어, 어? 아니, 너네가 자꾸 의심하니까…."
 "저희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쌤 혼자 놀라고 다 하셨잖아요. 남준쌤이랑 있다 왔죠?"
 "응, 형이랑…. 야!"

 


 나이스, 건졌네. 저들끼리 엄지를 치켜들며 웃던 아이들이 손부채질을 하던 태형에게 노골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준쌤이랑 얘기했어요? 아예 포기한 건지 태형은 마른 세수를 하며 고갤 끄덕였다. 와, 너네 취조 진짜 장난 없다. 유도심문이겠죠…. 그거나 그거나.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가시자 태형이 몇 번 헛기침을 하곤 분필을 집어 들었다. 칠판을 쳐다보며 한자를 적어내려가는 태형에 반 전체가 넋을 놓고 태형의 옆모습을 쳐다봤다. 모 아이돌과 쌍둥이 급으로 닮은 태형은 입만 열면 천진한 모습에 반전매력이라며 학생들에게 찬양받았다. 또 동갑내기인 지민과 친해 많은 학생들이 지민과 태형을 보며 앓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 수업할 때 가끔 한자가 기억이 안 나면 인상을 살짝 구긴 채 혀로 입술을 쓱 훑는 습관은 학생들이 흔히 말하는 태형의 발림 포인트 중 하나였다. 와, 존나 섹시하다.

 


 "일단 오늘 해서 두 번 더 진도 나가면 시험 범위 다 나가니까, 지루해도 수업 듣..."
 "웬일로 김 선생님이 수업을 다 하세요. 맨날 자습에, 잡담에 영화나 보더니. 아, 여기… 윤, 서진. 서진이?"

 


 태형이 설명하는 걸 듣는 반 학생들의 시선이 창밖에 머물기도 잠시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남준이 들어왔다. 반가움에 소리를 지르는 이들도 있어 작게 웃음으로 화답한 남준이 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찾았고 남준이 찾는 주인공은 잔뜩 의아한 얼굴을 한 채 손을 들었다. 네? 전데…. 서진이 손을 들자 옅게 미소를 지은 남준이 천천히 다가가 종이와 봉투를 전해주었다. 영어 말하기 대회, 우수상. 물론 상품권도 있고, 사정상 조회가 취소돼서 지금 내가 다 전달 중이거든. 학생들의 함성이 커지자 손가락을 입술에 대 조용히 시킨 남준이 몸을 돌려 교탁에서 잔뜩 기세등등한 얼굴인 태형과 마주했다.

 


 "혀, 김 선생님. 아무리 제가 보고 싶어도 그렇지. 이렇게 수업 중에 찾아오시면 곤란한데요."
 "네, 너 보러 온 거 아니에요."
 "그럼 왜 이거 선생님이 전해주러 오죠?"
 "영어 말하기 대회 상장을 담당 영어 교사가 가져다주는 게 무슨 문제가 되는 거죠?"

 


 따박따박 태형의 말에 받아치던 남준이 한숨을 내쉬며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더 반박할 게 없어 입을 다문 채 교과서만 쳐다보던 태형에게 시선을 한 번 준 남준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그대로 교실을 나갔다. 안녕히 가세요. 학생들의 인사에 웃어준 남준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다시 태형을 보는데 그 잠깐 새 기분이 다시 좋아져 있는 태형에 서로 눈빛만 주고받았다. ...뭐야? 몰라.

 


 "오늘 수업 여기까지만 할까? 자, 너네. "
 "네? 오늘 진도, 쌤이……."
 "그거야 수업을 한 번 더 하면 되는 거고. 고3들은 잠이 부족해. 얼른 자."

 


 학생들이 이상하다고 느낄 정도로 텐션이 올라간 태형의 핸드폰엔 짧은 문자가 와 있었다.

 


[맞아 사실]

 


 6교시 보건, 김석진

 


 일주일에 딱 한 번, 6교시인 날에 마지막 수업이 석진의 수업이라 반 학생들의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지만 2, 3학년 반 전부를 들어가는 석진의 수업은 모든 학생들이 기다리는 수업이었다. 지루하고 진부한 보건 수업이지만 학생들은 보건이 새로운 사탐 과목이라도 되는 듯 전부 집중하며 들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설명해주는데도 잠을 부르기는커녕 집중력을 향상시켜 많은 선생님들의 의문을 사기도 했다. 물론 이도 석진의 외모 덕이 컸다. 늘 흰 가운을 걸친 석진의 모습을 보며 의대를 꿈꾸는 학생도 적지 않았다. 의대 가면 리틀 김석진이랑 CC 가능? 응, 불가능. 세상에 저 외모는 석진쌤밖에 없음.

 


 "오늘은 아픈 애 없지?"
 "선생님, 제 마음이 아파요…."
 "이러면 지민의 마음이 좀 괜찮아지나?"

 


 쪽. 학생의 장난 섞인 농담에 석진도 같이 장난으로 손을 입술에 댔다 떼며  손키스를 날렸다. 높은 웃음소리가 교실을 가득 매웠고 석진도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너넨 그냥 내가 뭘 해도 웃기잖아. 먼저 진정한 석진이 짐짓 진지하게 학생들을 봤으나 학생들은 그마저도 잘생겼다며 앓기 바빴다. 교탁을 가볍게 툭툭 친 석진이 분필을 집어 들어 칠판에 글을 적었다.

 


 "오늘은 너네들이 지겹게 배운 성교…."
 "아, 쌤! 그런 걸 어떻게 그렇게 크게 써요! 남사스럽게."

 


 칠판에 글을 다 적은 석진이 기가 차다는 얼굴로 서로 얼굴을 붉힌 채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학생들을 쳐다봤다. 아니, 보건인데 왜 다 흐뭇해하는 거야…. 고개를 내저으며 칠판을 몇 번 두드려 이목을 집중시킨 석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가 이거 좀 읽어 볼래? 가볍게 미소를 띤 채 주위를 둘러보던 석진의 얼굴은 금세 착잡함이 드리웠다.

 


 "떽뚜."
 "섹스!!!"
 "예아, 섹스!"

 


 크게 외치며 자신들끼리 연신 웃는 걸 보던 석진이 한숨을 내쉬곤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떻게 그런 걸 크게 쓰냐며 아우성을 할 땐 언제고 이렇게 신나서 떠드는 모습에 헛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여전히 단어를 외치는 학생들을 보던 석진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지우개를 들어 칠판의 글을 신경질적으로 지운 석진이 여전히 착잡한 표정을 한 채 학생들을 바라봤다.

 


 "너네, 어떻게…. 내가 교생 때 성교육했던 남고 애들이랑 어쩜 그리 똑같은 수가 있어."
 "아, 저희가 양성성을 추구하는 편이라. 감사합니다."
 "양성성 같은 소리 하네. 섹스의 첫 번째 뜻이 성별이라고... 너희들이 생각하는 성교, 성관계가 두 번째 의미고. 너네 공항에서 섹스 옆에 숫자 0 써?"
 "아, 거기에 그렇게…! 아…!"

 


 큰 깨달음을 얻은 듯 탄성을 내지르는 학생들을 보며 석진이 머리를 감싸 쥔 채 교탁에 엎어졌다. 너네 고3이야….

 


1-1. 야, 너네는 교사잖아...

 


 "형, 여기 커피요."
 "아, 감사합니다…."

 


 잔뜩 지쳐 보이는 석진에게 커피를 건네준 지민이 고개를 기울였다. 보건실로 가지 않고 교무실로 온 석진이 의자에 편히 앉아 기대 지민에게 받은 커피를 들이켰다. 평소와 다르게 축 처진 석진에 걱정된 지민과 태형이 다가와 어깨를 주물러주자 작게 앓던 석진이 편하게 눈을 감은 채 안마를 받았다. 오늘 진짜 역대급으로 힘들었어. 평소 수업을 하고 나와 힘든 기색을 보인 적 없었던 석진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늘어놓자 목을 문질러주던 지민이 물었다. 뭐 했는데 그래요.

 


 "아으, 섹스 때문에…."
 "뭐요?"
 "형, 무슨 섹스를…! 그건 보건이 아니잖아요!"

 


 아, 너네도 똑같아. 지민과 태형의 안마를 받던 석진이 아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들에 손길을 뿌리쳤다. 당황의 눈빛과 충격을 받은 듯한 눈빛에 어디서부터 또 설명을 해줘야 할지 막막해 그대로 외면했다. 저것들은 선생이라는 게…. 이럴 때만 둘이 친구인 게 이해가 가는 석진이었다. 박지민도 정상은 아니야. 아직도 섹스에 대해 난리 난 동갑내기들을 무시한 석진이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며 고개를 내저었다. 여전히 석진에게 어떻게 그런 걸 가르치냐며 닦달하던 중 남준이 복사 용지를 들고 와 둘의 목소리가 남준에게 향했다.

 


 "아, 준쌤. 이 형이 글쎄 애들한테 섹스를…!"
 "너 멋대로 준쌤이라 부르지 마라. 아니, 어떻게 그런 문란한…!"
 "오늘 성교육 했었나 봐요? 문란은 너희 사고가 문란한 거겠지."

 


 얼이 빠진 태형과 지민을 보던 남준이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애들은 그렇다 쳐. 너넨, 교사라는 게….

 

 


올려야 하는 모순은 얻다 두고 이런 거나 써 자빠졌나 물으시면... 모순 저는 너무 어려워요 ㅜ

학명교는 짤로만 봐도 아시겠지만 슈홉/뷔랩/짐진 다각입니다

가벼운 에피소트 형식으로 이어질 거라 딱히 스토리가 없어요 (모순과는 다른 편한함)
사실 이건 판타지물입니다. 여고...에서 선생님을 엮을 리가 없겠죠...?

모순과 글 형식이 매우 다르다는 걸 느끼는 게 정상이에요. 저도 이렇게는 처음 써보거든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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