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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矛盾

[짐랩/민랩] 모순 矛盾 - 01

주방장 2017. 8. 20. 12:47

  세상이 바뀜에 따라 사회 질서와 성향이 변했다. 오메가라는 이유로 천한 취급을 받지 않았고, 차별적인 시선과 대우도 더 이상 받지 않았다. 오히려 우대를 받는 상황이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사회상에 따라 생명을 잉태하는 오메가는 당연하게 보호를 받을, 대우를 받을 권리를 가졌다. 알파와 오메가라는 수직관계의 신분 위계는 이렇게 천천히 허물어져 갔다. 문제는 알파에게 있었다. 오메가는 열성과 우성을 나누지 않고 대우받았지만 알파는 그렇지 않았다. 우성 알파는 뛰어난 능력에 있어서도 대우를 받았지만 우성이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이와 다르게 열성 알파는 예전의 오메가보다도 못한 취급을, 박대를, 차별을 받았다. 우열에서 밀린다는 사실만으로 열성 알파는 천대를 받았고 차별도 눈에 다 드러나게 받았다. 취업에서도, 승진에서도, 또 주위의 시선에서도 어느 하나 좋은 취급을 받을 수 없었다. 법에서도 열성 알파는 열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절대적으로 불리했으며 늘 피고인 석에 앉아 있었다. 제대로 된 변호 하나,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권리조차 없었다. 범죄를 저지르는 자는 열성 알파라는 것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었고 고정관념으로 굳혀졌다. 우성 알파의 범죄는 우성이라는 이름 하에 수면 아래로 묻어버리고 대신 다른 열성 알파의 죄목을 키워 수면 위로 끌어올려 많은 이들의 감정 소비 대상으로 삼았다. 그만큼 열성 알파는 존중받지 못했다.



열성 알파 하면 열등감은 당연한 수식어였다. 경찰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로는 '모든 범죄는 열등감으로부터', '열등감, 범죄의 근원' 등이 있었다. 열등감이라 쓰여 있을 뿐이지 사실상 열성 알파를 뜻하는 일종의 대명사였다. 열등감이라는 단어는. 열성이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열성 알파는 잠재적 범죄자라는 이름을 지녀야 했다.



열성 알파는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명제의 치명적 '모순'이다.



[짐랩/민랩] 모순 矛盾 - 01
모순 ; contradiction,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맞지 않음



W. 주방장



 '뭐냐, 김남준 알파야?'
 '누가 생기부 봤는데 쟤 열성이래.'
 '뭐야, 더러워.'



 다신 꾸지 않을 거라고, 애써 잊고 있었던 과거가 며칠 야근을 했다고 스멀스멀 올라와 저를 괴롭혔다. 열성 알파에게만 엄격한 사회에서 열성 알파라고 밝히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우열을 고를 수 없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우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은 언제나 으스대기 바빴다. 마치 자신이 우성인 것을 고른 것처럼.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져 불쾌한 기분에 대충 손으로 훑어 털어낸 남준이 살짝 젖은 머리칼을 몇 번 헤집다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평소 출근 준비를 하던 시간보다는 훨씬 일찍 일어났음에도 더 자고 싶거나 하진 않았다. 다시 잠들어 제 무의식이 만들어낸 환상에 놀아나기 싫었다.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확인하니 초췌해진 제 모습이 눈에 들어와 실소가 절로 나왔다. 몰골이 말이 아니네. 고개를 내저으며 얼굴만 쓸어내리다 손을 뻗어 물을 틀자 차가운 물이 그대로 내려앉았다. 차갑기만 하기도 잠시 금세 따듯해진 물에 금방 끝내고 나와 느긋하게 머리를 말리니 그제야 평소 일어나는 시간이었다. 넉넉하게 남는 시간에 아침이라도 챙길까 생각하기도 잠시 평소 안 먹어 버릇 했던  아침을 챙겼다간 괜히 속 버릴까 금세 생각을 접었다. 셔츠 단추를 잠그며 시간을 확인하자 지금 나가면 딱 넉넉할 것 같아 재킷을 챙겨 집에서 나왔다. 엘리베이터 문 앞에 박힌 고장이라는 문구에 작게 인상을 찌푸린 남준이 그대로 방향을 틀어 계단을 내려갔다. 시간이 많다고 좋아할 게 아니었다. 빠르게 지하까지 내려가 차에 타 숨을 고르다 천천히 시동을 걸고 차를 몰아 단지에서 빠져나갔다. 이른 시간은 맞는지 차가 많이 없어 평소보다는 더 일찍 회사에 도착해 주차장으로 내려가 주차를 하고 오니 엘리베이터에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이사진 중에서 꽤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이었다. 얼마 전부터 남준에게 은근한 관심을 보이는 통에 사내에서 편하게 있을 수가 없었다. 되도록 만남은 피하는 게 그나마 남준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시계를 한 번 확인한 남준이 걸음을 부러 천천히 옮기자 결국 저쪽에서 재촉을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준 씨! 얼른 타. 좋은 아침이네. 오늘은 좀 일찍 보는 것 같은데."
 "아, 아... 예.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왔더니 그런 것 같네요."
 "아침부터 남준 씨 얼굴 보니까 기분 완전 좋은데? 일할 맛 나네."



 은근슬쩍 붙어오는 이사에 이를 악물고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은 남준이 빨리 사무실 층수에 도착하기를 빌었다. 차라리 계단을 이용하는 게 백 번 낫다고 생각할 즈음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이사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 남준이 빠르게 나와 부서로 들어갔다. 살갑게 인사를 하는 직원들을 받아주고 자리에 앉으니 금세 서류철들이 건네졌다. 컴퓨터를 먼저 켠 후에 꼼꼼히 검토하며 수정할 것들을 체크하던 남준이 갑자기 울리는 알림에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내 메시지로 팀장들에게만 온 연락이었다. 세 시에 회의가 있다며 각 부서의 팀장은 꼭 필참하라는 내용에 짧게 답을 남긴 남준이 결재받을 서류들만 추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게 사심을 가득 담은 눈빛을 보내는 이사에게 가려니 걸음이 벌써부터 느려진다. 남준이 오메가인 줄 아는 이사는 평범한 알파였다. 우성과 열성이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은 보통의 알파. 연줄을 잘 잡았기에 그 능력에도 이사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거지 그 성격에 무직이었으면 무조건 수감행일 게 뻔했다. 대놓고 느껴지는 끈적한 시선과 간간이 몸에 닿는 손길은 늘 남준을 시험에 들게 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옆 부서 직원이 인사를 해와 간단히 목례로 답을 한 남준이 그대로 텅 빈 안으로 몸을 실었다. 탄지 얼마 되지도 않아 도착했다는 여성의 목소리에 작게 한숨을 내쉬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곧장 이사실로 걸음을 옮겼다.



 "윤 이사님, 영업 1팀 김남준입니다."



 문을 가볍게 두드린 후 들어가자 안경을 낀 채 서류를 읽고 있는 이사가 보였다. 그래봤자 다 급조한 연출에 불과한 걸 누가 모를 줄 아나. 잔뜩 집중하는 척 서류를 보던 이사가 그제야 남준이 들어온 걸 알았다는 듯 작게 웃으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허리 숙여 인사한 후 천천히 다가가 서류들을 건네자 은근슬쩍 손을 잡아온다. 뿌리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참아야만 한다. 작더라도 연줄은 연줄이다. 괜히 밉보였다가 된통 손해를 보는 건 저란 말이다. 치미는 감정을 애써 가라앉힌 남준이 옅게 입꼬리를 올리며 진득한 손길을 피해 허리춤에 붙였다. 몇 번 헛기침을 하곤 서류를 훑어보다 탁 소리가 나도록 책상에 내려놓은 이사가 안경을 벗은 후 입꼬리를 올리며 남준을 올려다봤다. 역시 남준 씨야, 대단해. 제 칭찬을 늘어놓으며 대놓고 몸을 훑는 시선을 보내는 이사에 욕지기가 치밀어 겨우 참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다가오더니 어깨를 툭툭 치며 은근히 더듬는 손길에 입술만 짓이겼다. 어떻게 이렇게 일처리를 잘해?


 "응? 한 번도 쉰 적 없잖아, 김 팀장. 연차나, 반차... 쓴 걸 못 봤는데?"
 "…네, 연차나, 반차 쓸 정도로 힘든 적이 없어서 안 썼습니다."
 "그래도 힘들지 않아? 그러다 큰일 나, 좀 풀어주고 살아야지."
 "아, 아…. 걱정 감사합니다. 그래도 쉴 때 쉬니까…."
 "그런 걸로 턱도 없어, 누가 좀 도와줘야지."


 내가 다 잘 해줄 테니까 걱정 말고 나한테 기대고 좀 그래. 어깨를 끌어안고 몇 번 토닥이던 이사가 떨어져 천천히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아무리 좋게 포장을 한다고 한들 이사의 말은 자신과 잠자리를 가지자 이 말이었다. 토기가 치미는 걸 가까스로 참은 남준이 이사에게 인사를 건네고 곧장 이사실에서 나와 애꿎은 벽만 내리쳤다. 오메가라 이력서를 위조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열성 알파로는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었으니까. 열성 알파라 밝히는 건 제게 칼을 겨누고 찌르는 것과 별반 다를 것도 없었다. 이미 경멸과 차별은 예전에 충분히 넘칠 만큼 받아서 더 이상 아플 것도 남지 않았다. 다만 아주 가끔 오메가를 자신보다 밑으로 여기는 알파들 때문에 진절머리가 날 뿐이다. 온몸에 돋는 소름에 팔만 쓸며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제 원래 부서 층을 누르곤 벽에 기대 눈을 감았다. 언제까지 윤 이사와 대면해야 하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왜 하필 영업부서를 담담하는 이사가 윤 이사인지. 언제는 자신의 비서로 일할 생각이 없냐며 추파를 던지기까지 했었다. 처음 면접을 볼 때부터 저를 마음에 들어 했던 사람이다. 이력서에서 다른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처음 던졌던 질문이 오메가라는 물음이었으니 말 다 했다. 할 수만 있다면 회사를 옮기고 싶었으나 지금만큼 최적의 조건을 만족하는 회사는 또 없을 것이고 제 신분을 세탁하느라 뒷바라지를 많이 한 부모님께 죄송해서라도 옮길 수 없었다. 그 잠깐 새에 지쳐 부서 안으로 들어와 저의 자리로 가자 확인해야 할 파일이 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 진짜 일하기 싫다.



 점심 맛있게들 먹어요. 점심시간이 되자 당연한 듯 제 눈치를 보는 사원들에 남준이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나름 허물없이 다가가고 대한다고 자부했지만 역시 직급의 위치에서 나오는 어색함과 불편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필 거래처는 왜 점심시간에 시간이 난다고 하냔 말이다. 마음 같아선 바쁘다고 저도 무산시키고 싶었지만 거래처가 만만찮은 상대라 굽히고 들어가야 한다. 서른 다 돼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깨작거리게 생겼다. 까라면 까야지, 그래. 슈퍼 을인 내가 뭘 할 수 있냐. 작게 한탄을 하며 한숨을 내쉰 남준이 괜히 답답한 공기에 넥타이를 살짝 끌어내렸다. 직원들도 없는데 욕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시간을 확인한 남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때 갑자기 부서 문이 열렸다. 실례하겠습니다.



 "저, 경영 2팀에서 왔는데…. 혹시 점심 드시러 가십니까?"
 "예? 아뇨. 거래처 미팅 갑니다."
 "그럼 이거…. 드세요. 휴가 낸 직원이 있단 걸 깜박해서 수량이 좀 남았거든요. 점심 챙길 시간 없으실 거 같은데…."
 "아, 감사합니다."



 어딘가 수줍은 얼굴에 작게 웃으며 고갤 끄덕여 감사 인사를 한 남준이 그대로 남자를 지나쳐 부서에서 나왔다. 단정한 흑발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꽤 유명한 브랜드의 포장용지가 눈에 들어왔다. 대학 시절 호기심으로 먹어 본 적 있던 S 브랜드의 샌드위치였다. 뭐가 뭔지 몰라 친구가 대충 골라준 걸로 먹었다. 지하로 내려가기 전 카페 로비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스무디 하나를 사 한 입 쭉 마셨다. 커피와는 다른 시원함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굳이 따지자면 커피보다는 에이드, 스무디 쪽을 좋아하는 남준이었다. 직원들이 사다 주는 아메리카노는 준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어 쓰디쓴 걸 겨우 웃으며 마신 거였던 터라 오랜만에 느끼는 과일 특유의 상큼함에 옅게 웃었다. 늘 주는 대로 받아먹는 게 문제였는지 항상 제 커피는 샷 두 잔 추가된 아메리카노였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타 샌드위치 포장을 뜯어 한 입 머금은 남준이 생각보다 맛있는 샌드위치에 살짝 놀라 눈을 깜박였다. 예전에 먹었던 건 이 정도로 맛있진 않았기에 더 그랬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금세 샌드위치를 다 먹은 남준이 남은 스무디를 한 번 쭉 빨아들이곤 시동을 켜 주차장을 나왔다.



 "그럼 계약은 변동 없이 이대로 진행하도록 하고, 이만 일어납시다."
 "예, 변동 사항 있으면 여기로 전화 주십시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요."



 거래처 전무에게 허리 숙여 인사한 남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에 작게 목례를 해 보였다.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길 기다리며 유하게 웃음을 띤 채 있다 이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모습을 보곤 그대로 한숨을 내쉬었다. 답답하게 죄인 넥타이를 살짝 끌어내리고는 의자에 기대 있는데 그대로 울컥 올라오는 토기에 급하게 입을 틀어막은 남준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약속 장소는 불안하게도 일식집이었다. 설마 싶어 들어가니 역시나 질 좋은 회들과 초밥, 어디든 해산물이 가득했다. 보기만 해도 메스꺼운 기분에 한참을 멍하니 있다 전무의 부름에 애써 웃으며 자리에 앉았고 열심히 집어먹었다. 먹지도 못하는 해산물을 실컷 먹은 게 화근이었다. 계약 자리라 못 먹는다 했다간 안 그런 척해도 밉보일 게 뻔해 억지로 쑤셔 넣었던 회였다. 뒤늦게 울컥울컥 올라오는 속에 급하게 화장실로 향한 남준이 바로 속을 게워냈다. 잔뜩 컥컥거리며 막힌 신음이 화장실을 울렸다. 더 이상 토해낼 게 없어 묽은 액이 나오고 나서야 화장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여기서 먹었던 음식은 물론 아까 받은 샌드위치까지 그대로 올라와 몰골이 말도 안 나올 정도로 참담했다. 그 잠깐 사이에 핼쑥해진 제 모습에 거울을 보며 헛웃음 지은 남준이 시간을 확인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주차장까지 가는 거리 동안에라도 뒤집어진 속을 달래야 했다. 부러 주차장까지 가는 걸 한 바퀴 돌아서 가자 그나마 진정된 속에 차에 올라탄 남준이 숨을 크게 한 번 내쉬곤 시동을 걸어 그대로 회사로 향했다.



 "어, 남준 씨. 미팅 갔다 오는 길인가 봐. 조금 늦어도 괜찮은데. 내가 잘 말해두려고 했지."
 "말씀만으로도 감사힙니다, 윤 이사님. 그대로 이렇게 왔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 아닐까요?"
 "그렇지. 난 남준 씨 그런 마인드가 좋더라."



 하필 회의실 들어가기 전에 윤 이사랑 마주치냐. 겨우 진정시킨 속이 더 이상 게워낼 게 없는데도 울렁거렸다. 괜히 저를 싸고돌 것만 같아 부러 좀 밟았다. 제 예상에 딱 들어맞는 윤 이사의 행동에 속으로 작게 혀를 찬 남준이 시간의 텀을 두고 바로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넓은 통유리 창에 빛이 잔뜩 들어왔다. 저기 앉으면 잠 오지 않나, 나른하게. 창가 반대편에 앉아 이사진 자리를 살피던 남준이 앞에 놓인 물에 뚜껑을 열어 한 모금 들이켰다. 윤 이사의 노골적인 시선에 괜히 목만 탔다. 빨리 회의나 시작했으면. 남준의 간절한 바람이 통했는지 이사진들이 다 참석하자마자 회의를 시작했다. 대충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각 부서끼리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 같았다. 대학 조별 과제도 아니고. 작게 중얼거린 남준이 갑자기 들리는 제 부서 이름에 살짝 움츠렸던 자세를 바로 했다.



 "영업 1팀, 영업 2팀이 같이 합니다."
 "예."
 "네."


 이 프로젝트를 먼저 고안한 듯 보이는 이사와 눈을 맞춰오자 고개를 끄덕이던 남준이 묘하게 귀에 익은 목소리에 티 나지 않게 작게 인상을 구겼다. 들어본 적 있는 미성이었다. 제 바로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남준이 제 앞에 있는 인영에 눈만 깜박였다. 아까 제게 샌드위치를 건네준 남자였다. 사원일 거라 생각했는데 팀장이었나 보다. 팀장 씩이나 되는 사람이 왜. 어딘가 수줍게 남준에게 샌드위치를 건네던 말갛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다른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입꼬리를 끌어올린 여유로운 얼굴은 묘하게 서늘하기까지 했다. 작게 눈인사를 주고받고 다시 정면을 쳐다보는데 옆에서 느껴지던 시선이 사라질 줄 몰랐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빤히 보는 게 느껴져 앞에 놓인 서류를 한 번 확인한 남준이 이상으로 회의를 마치겠다는 말에 화색을 띠었다. 인사를 올리고 모든 인원이 빠질 때까지 기다리는데 제 뒤통수에 꽂히는 시선은 그대로였다. 회의실이 텅 비자 걸음을 떼 회의실에서 나온 남준이 뒤따라 나오는 남자에게 먼저 고개를 숙이며 손을 내밀었다.



 "영업 1팀 팀장, 김남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영업 2팀 팀장, 박지민이에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남준 씨."



  내밀어진 남준의 손을 맞잡은 지민이 옅게 웃은 후 악수를 하고 떨어졌다. 아까부터 느껴지는 묘한 이질감이 남준을 휘감았다. 박지민. 속으로 작게 지민의 이름을 굴리던 남준이 지민과 마찬가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린 채 지민을 쳐다봤다. 순하게 접히는 눈과 부드럽게 올라가는 입꼬리가 호감이 절로 가는 상이었다. 잘 해봐요, 우리. 지민의 말에 작게 고개를 주억이던 남준이 대외적인 미소를 지으며 목례를 하곤 몸을 돌렸다. 저는 처리할 게 많아서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지하에 머물러 있는 걸 확인한 남준이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또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숨까지 답답해지는 것 같아 넥타이를 살짝 끌어내린 채 계단을 내려갔다. 친절한 사람이지만, 친해지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부서로 돌아와 자리에 앉은 남준이 웃음이 서린 지민의 얼굴을 떠올라 작게 입술을 깨물었다. 절대 지민과는 가까워지지 말아야 제 회사생활이 편할 것이다. 악수를 하던 순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영업 2팀 박지민은 우성 알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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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올리네요 하이고..
짐랩 리맨물 모순,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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